번역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의 언어로 표현된 것을 또다른 언어로 바꾸는 작업에서 많은 정보가 사라지고 오해가 발생하게 됩니다. 하나의 말은 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환경도 포함하기 때문에 원래의 언어가 아니면 표현하기 어려운 것도 많습니다. 최근 번역 문제로 가장 힘든 분은 다음 영화를 번역한 분인 것 같네요.
수학에서도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들이 많이 이루어졌었는데요, 번역자료가 많은 만큼 오역도 많았을 것입니다. 수학책 번역에서 생긴 용어 중에 '아녜시의 마녀'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서는 이것을 다룹니다.
위 그림에서 보라색으로 그려지고있는 곡선을 아녜시의 마녀라고 합니다.
아녜시는 이탈리아 수학자 Maria Gaetana Agnesi(1718/5/16 - 1799/1/9)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아빠는 볼로냐 대학 수학과 교수였습니다. 아녜시는 어렸을 때부터 천재성을 보였고, 동생들을 본인이 직접 가르쳤다고 합니다. (동생이 21명이랍니다.) 아빠는 딸을 사교모임에 데리고 나가서 그녀의 재능을 뽐내는 것을 바랬지만, 아녜시는 그런 환경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20세부터는 집안일과 종교 생활에 전념했습니다. 후에 교황 베네딕토 14세가 볼로냐 수학과 교수로 초빙한 것도 거절했다는군요. 브리타니카에 따르면 서양에서 수학적으로 명성을 얻은 첫 번째 여성이라고 평가됩니다. 말년에는 전재산을 바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고, 본인도 마지막까지 그들과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녀는 1748년 "이탈리아 청년들을 위한 미적분학"이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이때가 30세네요. 이 책은 여러 수학자들에게 가치를 인정받아 다양한 언어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오일러의 방대한 업적에 대한 최고의 개론서로 인정이 됐던 책입니다. 이 책이 주로 다룬 것은 미적분학과 대수학을 융합하는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제1권은 유한양에 대해서 다루고, 제2권이 미적분학을 다룹니다. 이 책을 번역한 사람들은 감사의 인사로 값비싼 선물과 편지를 아녜시에게 보냈습니다.
이 책에 아녜시의 마녀가 있습니다.
그림에 보이는 원 C는 x축과 D에서 접합니다. 점 E에서 원과 접하는 직선 (편의상 $l$)을 긋습니다. 원 위의 점 F와 점 E를 지나는 직선이 $l$과 만나는 점을 G라 하고 F를 지나면서 x축에 평행인 선과 G를 지나고 x축에 수직인 선이 만나는 점을 H라 할 때, H가 만드는 자취가 아녜시의 마녀입니다. 아녜시는 이 곡선을 이렇게 정의하고 자취방정식을 구한 후 극점, 변곡점 등의 계산을 덧붙였습니다. 아래는 작도과정입니다.
이 곡선에 '아녜시의 마녀'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탈리아어로 된 아녜시의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라는 것입니다. 위키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이 돼있기는 합니다. 하나의 가설로 받아들이면 되겠습니다.
이 곡선의 방정식은 다음과 같음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r$은 그림의 원의 반지름입니다.
$$y= \frac{ 8r^3}{x^2+4r^2}$$
특히, $2r=1$이 되면 많이 단순화 되어서
$$y= \frac{1}{x^2 +1}$$
이 됩니다. 적분하면 역삼각함수 $\arctan(x)$가 되는 함수입니다. 한편, $-1<x <1$에서 다음 등식이 하므로,
$$ \frac{1}{1+x^2} = 1 -x^2 +x^4 -x^6 + x^8 - \cdots$$
양변을 0에서 $x$까지 ($-1<x<1$) 적분한 식에서 양변에 $x \to 1$ 극한을 취하면 (단 $\arctan(0)=0$, $\arctan(1)= \pi/4$) 다음과 같은 관계식이 얻어집니다.
$$ \frac{\pi}{4} = 1 - \frac 1 3 + \frac 1 5 - \frac 1 7 + \cdots$$
이것은 라이프니츠의 원주율공식입니다.
아녜시의 마녀는 물리학의 파동, 양자역학에서도 하나의 해로 등장합니다.
이 함수는 통계에서도 "코시분포"로 등장하는데, 평균을 구할 수 없는 연속확률분포이기도 하고 많은 통계적인 성질에서 예외상황으로 등장하면서 톡톡히 '마녀'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곡선의 이름을 따서 지은 다음과 같은 소설도 있고요,
아녜시의 이름을 따서 이름붙인 소행성(16765 Agnesi), 금성의 분화구, 술도 있습니다. 아래 사진의 중앙에 아녜시가 보이네요(왼쪽은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Ada Lovelace, 오른쪽은 나폴레옹의 연인 Marie Walews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