Émilie du Châtelet 초상화

 

 

1749년 9월 9일, 프랑스 뤼네빌에 위치한 로렌 공작의 궁전, 42세의 에밀리 뒤 샤틀레(Émilie du Châtelet)는 5일 전의 불길한 느낌이 맞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딸을 임신하고 있었다. 펜싱, 승마, 체조를 좋아하고 거구인 그녀였으나, 이번 출산은 너무 힘들었다. 안그래도 그녀는 이번 출산이 힘들 것을 미리 느끼고 4년간 작업하던 뉴턴의 프린키피아 번역판을 무리해서 마무리한 상황이었다.

고열에 시달리던 그녀는 번역본 원고를 달라고 한 후 거기에 "1749년 9월 10일" 이라는 날짜를 추가했다. 그 직후, 그녀는 의식을 잃었다. 그녀와 아이는 감염으로 사망하게 된다.

 

7년 뒤, 1756년 그녀의 원고 일부가 클레로(Alexis Claude Clairaut; 1759년 헬리 혜성의 등장 시기를 프린키피아로 계산함)의 지휘 하에 출판이 되었다. 전체 작품은 1759년에 출판되었다.

 

그녀의 번역본은 프린키피아 제 3판을 기반으로 프랑스어로 번역이 되었다. 그녀는 뉴턴의 책에 있는 어려운 용어를 최대한 배제하고, "궤도", "타원"과 같은 용어도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두었기에 프린키피아가 너무 어려워서 못 읽던 당시 과학자들에게 큰 칭송을 받았고, 이는 뉴턴의 라틴어판으로 공부하던 영국에 비해 프랑스 학자들이 쉽게 프린키피아를 마스터하게 도와주었다. 그녀의 번역본은 아직까지도 프랑스어 번역본의 표준으로 여겨진다.

다음 사진은 그녀의 번역본의 속표지에 해당하는 페이지를 캡처한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