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figure is acquired at http://www-history.mcs.st-andrews.ac.uk/PictDisplay/Ulam.html




아래 글은 MacTutor History of Mathematics archive에서 번역한 것입니다. 글쓴이의 문체를 따르려고 했으나, 곳곳에서 수정이 좀 가해졌습니다. 원문 링크는 여기 입니다. http://www-history.mcs.st-andrews.ac.uk/Biographies/Ulam.html





스타니스와프 마르친 울람(Stanisław Marcin Ul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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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09 년 4 월 13일 렘 버그, 오스트리아 제국 (지금 리비우, 우크라이나)
사망: 1984 년 5 월 월 13 일 산타페, 뉴 멕시코, 미국


스탠 울람은 어떻게 수소폭탄이 융합을 시작하게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풀었습니다. 또한, 울람은 ‘몬테-카를로 방법’을 고안해냈는데, 이것은 통계적 샘플링이 관계된 수학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널리 쓰이는 방법입니다.

그가 10살일 때, 울람은 리비우의 김나지움에 들어갔습니다. 이맘때쯤에 그는 천문학에 관심을 가졌다가 나중에 물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12살쯤에 한 삼촌은 그에게 망원경을 선물해 주었고, 이후에 그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론을 이해하려고 노력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수학적인 이해력을 필요로 했고, 이에 따라 14세에는 독학으로 수학을 공부합니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이 배우는 수준을 월등히 앞서는 실력을 가지게 됩니다. 울람이 했던 인터뷰중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 16세에 나는 순전히 독학으로 미적분을 공부했습니다. 코발레프스키(Kowalevski)의 책을 봤죠. 이 사람은 독일 사람인데 소냐 코발레프스카야(Sonia Kovalevskaya)와 혼동하시면 안됩니다…. 그러고는 시어핀스키의 책에서 집합론에 대한 것도 읽었습니다. 내 생각에 집합론은 잘 이해한 것 같습니다. 학교에는 Zawirski라고 대학교에서 논리학을 가르치시는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시절과 폴리테크닉에 들어갔을 때 집합론에 대해 그와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렇게 천문학, 물리학, 그리고 수학에 관심이 있던 울람은 리비우의 폴리테크닉에 입학합니다. 1927년, 그가 신입생때, 그는 리비우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쿠라토프스키(Kuratowski)에게 지도를 받습니다.

쿠라토프스키는 제게 집합론 초급 과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저는 종종 질문을 했고, 수업시간이 끝나고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선생님은 수학에 관심이 많고 재능도 있는게 분명한 어린 학생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나는 운 좋게도 선생님이 제시한 미해결 문제를 풀어냈습니다.


1933년에 그는 리비우 폴리테크닉에서 박사학위를 받는데요, 그 시절에 그는 바나흐(Banach) 밑에서 연구를 합니다. 바나흐는 1902년 르벡이 제시했던 구간 [0,1]에서 정의된 특별한 성질을 가지는 측도를 찾는 문제를 풀고 있었습니다. 바나흐는 1929년 관련된 측도 문제를 해결했지만, 일반화된 연속체 가설을 가정한 결과물이었습니다. 울람은 1930년에 연속체 가설 없이 바나흐의 결과를 증명합니다. 바나흐의 결과물이 더 강력해진 셈이죠. 1935년에 울람은 폰 노이만에게서 프린스턴 고등과학원에 몇 달간 초대를 받습니다. 3개월 체류할 생각으로 그는 프랑스에서 뉴욕으로 갑니다. 고등과학원에서는 G.D. 버코프와의 인연으로 하버드에 초대됩니다.

... 폴란드에 다시 돌아오기는 했지만, 그 가을에 하버드 대학의 소위 Society of Fellow의 일원의 자격으로 캠브리지에 돌아갔습니다. .. . 바로 강의를 시작했죠. 처음에는 기초과정을, 그러다가 점점 고등과정을 수업하게 되었습니다. 1940년에는 하버드대의 강사가 되었죠. 나는 캠브리지에 있던 시절 매년 폴란드와 미국을 왕래했습니다. 여름이면 나는 내 가족과 친구, 그리고 수학자들을 만났습니다. 폴란드에서의 수학 생활은 아주 열정적이었습니다. 수학자들은 스코틀랜드풍 카페나 로마풍 카페에서 자주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몇시간이고 앉아서 수학을 했지요. 매년 여름마다 나는 그것을 반복했었습니다. 그러다가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한달쯤 전에 폴란드를 떠났습니다.


스코틀랜드풍 카페에서의 모습이 연상이 되실겁니다. 1940년, 울람은 위스콘신대학의 조교수로 임명됩니다. 1943년에는 미국 시민이 됩니다. 그해에, 폰 노이만은 울람에게 전쟁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일을 제안합니다. 둘은 만나게 되죠.

.... 그가 제안한 일에 대해 좀 더 알아보려고 시카고의 어느 기차역에서 만났죠. 거기에 갔지만 폰 노이만은 무엇을 하려는 일인지 내게 더 말해줄 수 없었어요. 그곳에는 고릴라처럼 생긴, 경호원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폰 노이만과 나는 몇 가지 수학과, 몇 가지 흥미로운 물리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고, 제시한 일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말을 했어요. 바로 로스 앨러모스에 가야 했어요. 몇 달 후, 아내를 데려올 수 있었죠. ... 처음으로 정말 이상한 곳에 가게 되었어요.


그는 뉴 멕시코의 로스 알라모스 국립 연구소에서 수소폭탄에 대해 일을 했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리학자인 에드워드 텔러와 일을 하면서, 울람은 핵융합 폭탄 제작에서 만나게 되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폭발에 압축이 극히 중요한데, 핵분열 폭탄에서 나오는 충격파가 이 압축을 만들 수 있다는 제안을 했죠. 그는 더 나아가, 그는 디자인을 조심스럽게 하면 이 역학적 충격파가 한 곳에 몰릴 수 있게 해서 융합연료를 빠르게 태울 수 있게 된다는 것도 제안했습니다. 텔러는 역학적 충격보다는 방사선 내폭을 열핵 연료의 압축에 사용하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텔러-울람 설정이라고도 불리는 이 두 단계의 방사내폭디자인은 현대 열핵무기를 탄생시키게 됩니다.


울람은 J. C. 에버렛(J. C. Everett)과 함께 우주선의 원자력 추진 계획인 ‘오리온 계획’을 제안합니다. 로타는 1946년에 울람의 성격 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1946년 로스 앤젤레스에서의 어느 날 아침, 남부 캘리포니아 대학에 새로 임명된 교수인 울람은 말을 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몇 시간 후, 그는 뇌염을 진단받고 위험한 수술을 받았습니다. ... 하지만, 그 후 그를 알고 있었던 사람 누구에게나 느껴지는 성격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 그가 이상한 간격으로 분출해냈던 아이디어들은 그 이전이나 이후에 보았던 무엇보다도 매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의도적으로 더 깊이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 듯 했습니다. ... 그는 아이디어를 그의 손상되지 않은 상상력에 의존을 했고, 기술적인 것은 다른 사람의 노력에 맡겼습니다. ... 심하게 손상된 기술적인 약함이 놀라울 정도로 창조적인 상상력과 결합되어 있는 것은 울람이 보여주는 드라마였습니다. 내가 그를 만난 직후부터, 우리의 대화가 계속되는 한, 그의 드라마는 금지된 주제의 하나가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 하지만 그는 내가 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나도 그가, 내가 안다는 걸 안다는 것을 압니다.


울람은 로스 알라모스에 있는 동안 ‘몬테-카를로 방법’을 개발합니다. 이것은 수학적 문제의 답을 무작위로 주어지는 숫자들의 통계적 추출을 통해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최근에 수학 소프트웨어에 많이 사용됩니다. 그는 1965년 콜로라도 대학에서 수학과 학장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로스 알라모스에 있었습니다. 그가 사망할 당시에는 콜로라도 대학의 생명수학(biomathematics)과의 교수였습니다. 그의 업적을 요약해달라는 요청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원래 나는 집합론에 대해 연구했고 몇몇 문제는 아직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어요. 너무 전문적이라 묘사하기 어렵지만, 가측 카디널들, 집합론에서의 측도, 추상 측도 등이 그런 것들이에요. 그 후, 위상수학에서는 몇 가지 결과를 냈어요.... 그러고는 에르고딕 이론을 조금 연구했어요. 옥스토비(Oxtoby)와 나는 오래된 문제 하나를 해결했죠. 그 사람하고는 나중에 다른 분야에서도 문제를 풀었어요. 나의 경우는 대체로 운이 좋았어요. 또한, 집합론, 군론, 위상수학, 수리물리에서 좋은 협력자를 만난 행운도 있었고, 대단한 지적 성취는 없지만 아주 유용한 것들이나 그와 유사한 것들에서도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울람의 저서로는 A collection of mathematical problems(1960), Sets numbers and universes(1974 년), Adventures of a Mathematician(1976) 등이 있습니다. 로타는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울람의 마음은 수천개의 이야기, 동화, 농담, 경구, 발언, 퍼즐, 오야지개그(tounge-twisters), 각주, 결론, 슬로건, 공식, 다이어그램, 인용, 리머릭, 요약, 구라, 비문, 그리고 헤드라인의 저장소입니다. 정상적인 대화를 하다가도 그는 저장소에서 오십여개의 이상한 항목을 꺼내어 차근차근 무심히 나열하고는 했죠. 그의 2차 메모리는 그가 같은 사람 앞에서 너무 자주 같은 말을 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기능을 했어요.


그의 아내였던 프랑수아 울람은 울람의 연구 방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울람... 그는 정말 말이 많은 사람이에요. 생각을 안하고 있을 때는 ... 그가 가장 즐기는 것은 친구 및 동료들과 말하고, 토론하고, 논쟁하고, 대화하는 것이에요. 그의 놀라운 메모리에 의존해서 그는 모든 것을 머리에 담아놓고 다녀요... 펜을 종이에 가져가는 물리적인 행동은 항상 그에게 고통스러운 것이에요. 그의 마음과 눈이 장애물이지요. 그의 마음은 그의 손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그의 눈은 한 쪽은 심한 근시이고 다른 쪽은 심한 노안이기 때문에... 어린시절은 무서워서, 그후에는 젊은이의 허영심 때문에 그는 최근까지도 안경을 쓰지 않아요. 때문에 울람은 항상 논문을 쓰려면 힘든 시간을 보내곤 해요. 손으로 쓰든 타자기를 사용하든 말이죠. 기계든 아니면 기계적 장치든 그를 무기력하게 해요... 그러면 그는 어떻게 글을 쓸까요? 대체로 말로 한답니다...


Article by: J J O'Connor and E F Robert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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